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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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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사정

남천주 회군과 옹산성 전투

문무왕의 대고구려전 회피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我受命, 萬里渉滄海而討賊, 艤舟海岸, 旣踰月矣. 大王軍士不至, 粮道不繼, 其危殆甚矣. 王其圖之.

-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군량 수송: 신라의 요식행위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 mbong.kr 엠봉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8쪽; 114쪽. 참고용 지도이다.

(참고)

당군의 진퇴양난: 조정과 현장의 불통

실제로 방효태는 사수 전투 당시에도 다음과 같이 전쟁 수행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或勸突圍就劉伯英・曹繼叔之營. 孝泰曰, “我伏事國家兩代, 過蒙恩遇, 高麗不滅, 吾必不還, 伯英等何必救我. 又我將鄕里子弟五千餘人, 今並死盡, 豈一身自求生邪.” 賊內薄攻之, 死者累萬, 箭如蝟毛, 遂與其子一十三人皆死之.

- 『책부원구』 권373, 장수부34

위 사료에 따르면 방효태는 죽기 직전에도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만일 당군 내부에서 이미 철수가 확정되어 있었거나 당나라 조정에서 철수 명령이 내려왔더라면 이러한 발언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착안해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당군의 퇴각은 앞서 3개 도행군의 회군과 마찬가지로 당고종의 명령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평양성 함락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각하는 것은 곧 패배를 시인하는 행위이며, 막대한 부담이 따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645년에는 당태종이 직접 철군을 결정했으므로 휘하 장군들의 부담이 덜했겠지만, 662년의 당고종이 이러한 결정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황이 좋지 않다고 해도 임아상, 소정방, 방효태 등이 자의적으로 철군을 단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구려군의 공세: 소정방 퇴각의 이유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 mbong.kr 엠봉

이상훈, 「제2차 고당전쟁기(661~662) 사수 전투의 전개 양상」, 『북악사론』 17, 2023, 165쪽. 참고용 지도이다.

김유신의 철수와 임진강 전투

[2차 고당전쟁] 7. 선택과 집중 | mbong.kr 엠봉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17쪽. 참고용 지도이다.

고구려와 신라는 각자 중시하는 바를 선택했고, 전력을 집중하여 이를 달성했다.

[7-1]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6月.

[7-2]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3-4쪽; 박지현, 「661~663년 신라의 백제부홍군 공격과 그 배경」, 『충청학과 충청문화』 31, 2021, 138쪽.

[7-3] 이상훈, 「나당연합군의 군사전략과 백제 멸망」, 『역사와실학』 59, 2016, 59-60쪽.

[7-4] 김병남, 「신라의 백제부흥세력 공략 과정과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28, 2018, 262쪽.

[7-5] 김병남, 「신라의 백제부흥세력 공략 과정과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28, 2018, 264쪽.

[7-6] 『三國史記』 卷5, 新羅本紀 太宗武烈王 8年 4月, “王以諸將敗績, 論罰有差.”

[7-7]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5쪽.

[7-8] 장창은, 「660~662년 고구려와 신라 · 당의 전쟁」, 『신라사학보』 38, 2016, 93쪽.

[7-9] 김병남, 「백제 부흥전쟁기의 옹산성 전투와 그 의미」, 『전북사학』 42, 2013, 55쪽.

[7-10]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6月.

[7-11]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6-57쪽.

[7-12]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5쪽.

[7-13] 김병남, 「신라의 백제부흥세력 공략 과정과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28, 2018, 266쪽.

[7-14]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27쪽.

[7-15]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8月.

[7-16]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7-8쪽.

[7-17]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3-134쪽.

[7-18]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84쪽.

[7-19]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9月.

[7-20]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6-57쪽.

[7-21]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7쪽.

[7-22]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23] 김병남, 「백제 부흥전쟁기의 옹산성 전투와 그 의미」, 『전북사학』 42, 2013, 62쪽.

[7-24]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25] 김병남, 「백제 부흥전쟁기의 옹산성 전투와 그 의미」, 『전북사학』 42, 2013, 62-63쪽; 김병남 , 「신라의 백제부흥세력 공략 과정과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28, 2018, 265-266쪽.

[7-26] 김병남, 「백제 부흥전쟁기의 옹산성 전투와 그 의미」, 『전북사학』 42, 2013, 63쪽.

[7-27]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1쪽; 장창은, 「660~662년 고구려와 신라 · 당의 전쟁」, 『신라사학보』 38, 2016, 96쪽.

[7-28]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3쪽.

[7-29]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9月.

[7-30]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9月.

[7-31]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32] 김병남, 「백제 부흥전쟁기의 옹산성 전투와 그 의미」, 『전북사학』 42, 2013, 64쪽.

[7-33]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34]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35]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10月.

[7-36] 김수진, 「「含資道捴管柴將軍精舍草堂之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대구사학』 140, 2020, 37쪽.

[7-37] 김수진, 「「含資道捴管柴將軍精舍草堂之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대구사학』 140, 2020, 39쪽.

[7-38]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0쪽; 노양규, 「662년 식량수송작전을 통해 본 김유신 장군의 활동과 함의」, 『한국군사학논총』 4, 2013, 109쪽;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8쪽; 장창은, 「660~662년 고구려와 신라 · 당의 전쟁」, 『신라사학보』 38, 2016, 102쪽;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8쪽.

[7-39]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7-238쪽.

[7-40]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元年 10月.

[7-41]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83-184쪽.

[7-42]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9쪽.

[7-43]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2年 正月.

[7-44]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9쪽.

[7-45]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7쪽.

[7-46]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2年 正月.

[7-47]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48]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9쪽.

[7-49]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6-137쪽.

[7-50]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8쪽.

[7-51]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9쪽.

[7-52]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84쪽.

[7-53]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15쪽.

[7-54] 『日本書紀』 卷27 天智天皇 元年 3月, “高麗乞救國家, 仍遣軍將, 據疏留城. 由是, 唐人不得略其南堺, 新羅不獲輸其西壘.”

[7-55] 서영교, 「倭의 百濟 援助와 蘇定方의 平壤城 撤軍」, 『대구사학』 117, 2014, 21쪽.

[7-56] 이상훈, 「백제부흥군의 옹산성 주둔과 신라군의 대응」, 『역사교육논집』 57, 2015, 139쪽.

[7-57]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4쪽.

[7-58]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59] 『三國史記』 卷47 裂起傳.

[7-60]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2쪽; 노양규, 「662년 식량수송작전을 통해 본 김유신 장군의 활동과 함의」, 『한국군사학논총』 4, 2013, 112-113쪽; 장창은, 「660~662년 고구려와 신라 · 당의 전쟁」, 『신라사학보』 38, 2016, 103쪽;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88쪽.

[7-61]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1쪽.

[7-62] 김상보, 나영아, 「고대 한국의 도량형 고찰」, 『동아시아 식생활학회지』 4(1), 1994, 7쪽.

[7-63] 이종봉, 「韓·中·日 中世時期 度量衡制 比較 硏究」, 『석당논총』 73, 2019, 251-252쪽.

[7-64] 정혁수, 「文武王의 絹布 규격 조정과 통일정책」, 『신라사학보』 38, 2016, 340쪽.

[7-65] 정혁수, 「文武王의 絹布 규격 조정과 통일정책」, 『신라사학보』 38, 2016, 340쪽.

[7-66] 이종봉, 「韓·中·日 中世時期 度量衡制 比較 硏究」, 『석당논총』 73, 2019, 249쪽.

[7-67]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1쪽.

[7-68]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69]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2年 2月.

[7-70] 노양규, 「662년 식량수송작전을 통해 본 김유신 장군의 활동과 함의」, 『한국군사학논총』 4, 2013, 112쪽.

[7-71]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72] 『三國史記』 卷44 金仁問傳.

[7-73] 『三國遺事』 卷1, 紀異1 太宗春秋公.

[7-74] 이상훈, 「662년 김유신의 군량 수송작전」, 『국방연구』 55(3), 2012, 102쪽.

[7-75]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62쪽.

[7-76]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2年 2月;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三國遺事』 卷1, 紀異1 太宗春秋公.

[7-77]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60쪽.

[7-78] 『資治通鑑』 卷200, 唐紀16, 高宗 龍朔 2年 2月 조.

[7-79]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92쪽.

[7-80]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61쪽.

[7-81] 『新唐書』 卷223上, 列傳148上 姦臣上 許敬宗.

[7-82] 『三國遺事』 卷1, 紀異1 太宗春秋公.

[7-83]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84] 『三國史記』 卷22, 高句麗本紀 寶藏王 21年 正月.

[7-85]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17쪽.

[7-86] 이상훈, 「제2차 고당전쟁기(661~662) 사수 전투의 전개 양상」, 『북악사론』 17, 2023, 164-165쪽.

[7-87] 서영교, 「당의 해양력과 고구려 - 당의 2차 침공(647년) 이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문화』 8, 2023, 310쪽.

[7-88] 「任绪墓誌」, “第二子雅相 … 頃以遼隧尚梗, 三韓未清, 應受脤之隆, 當出閫之重. 而廟謀未發, 膏肓已兆. 兩兒落寐, 方漸彌留, 遠志屈於頹齡.”

[7-89]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98쪽.

[7-90] 『資治通鑑』 卷200, 唐紀16, 高宗 龍朔 2年 2月 조.

[7-91] 이상훈, 「제2차 고당전쟁기(661~662) 사수 전투의 전개 양상」, 『북악사론』 17, 2023, 164-165쪽.

[7-92]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00쪽.

[7-93]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90쪽.

[7-94] 이상훈, 「제2차 고당전쟁기(661~662) 사수 전투의 전개 양상」, 『북악사론』 17, 2023, 165쪽.

[7-95]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08쪽.

[7-96]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97] 『三國史記』 卷7, 新羅本紀 文武王 11年 答薛仁貴書.

[7-98] 『三國遺事』 卷1, 紀異1 太宗春秋公.

[7-99] 『三國史記』 卷42, 金庾信傳 中.

[7-100] 『三國遺事』 卷1, 紀異1 太宗春秋公.

[7-101]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2年 2月.

[7-102] 『三國史記』 卷44 金仁問傳.

[7-103]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10-111쪽.

[7-104] 노양규, 「662년 식량수송작전을 통해 본 김유신 장군의 활동과 함의」, 『한국군사학논총』 4, 2013, 117쪽.

[7-105]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83쪽.

[7-106] 노양규, 「662년 식량수송작전을 통해 본 김유신 장군의 활동과 함의」, 『한국군사학논총』 4, 2013, 117쪽;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15쪽.

[7-107] 이민수, 「662년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와 임진강 전투 재구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116쪽.

[7-108] 『舊唐書』 卷199, 列傳149 東夷 高麗, “宗嗣位, 又命兵部尙書任雅相·左武衛大將軍蘇定方·左驍衛大將軍契苾何力等前後討之, 皆無大功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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