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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경종 독살설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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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ong.kr/issue/1868552 복사

1. 경종 독살설이 현재에도 그래도 가능성 있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임오화변과 관련이 있다 보임

자기 아들도 죽인 놈이 지 형인들 못 죽일까 하는 ...

만약 임오화변이 없었다면 아마 영조 당대는 몰라도 현재에는 그저 그런 설로 나왔을 가능성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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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제를 세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 없었음

왕실 후계자는 정해야 하고

왕에게 아들이 없으니 세제는 당연한 것임

3. 대비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예법상 맞는 말임

조선 후기 정치사 전공한 교수님께 강의 들은 것이 있느네 ..

세자는 그냥 왕이 정하고 중국에 사신 보내면 끝인데 ...

세제는 웃전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그 웃전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임

자기 아랫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수평 이동이니까 웃전을 한 번 거쳐서 내려 간다는 의미임

참고로 이러한 예법 때문에 태종이 정종의 세자가 된 것임

세제가 되려면 웃전 즉 이성계의 허락이 절대적인데

이성계는 절대 허락 안 할 것이니까...

4. 그럼 노론의 문제는 뭐냐고?

왕이 연잉군을 세제로 삼든 남대문 노숙자를 세자로 삼든 그건 왕의 권한인데

감히 신하 주제에 왕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 것 자체가 불충임!

더는 설명 필요 없음

5. 문제의 게장

문제의 게장

게장과 감을 먹고 왕이 탈을 일으켰다 ....

그런데

게장 후보군 음식이 두 개임

1.

경종 독살설에 대해서 ... | mbong.kr 엠봉 경종 독살설에 대해서 ... | mbong.kr 엠봉

뭔 소리냐 싶겠지만

이 단어 ..

이 단어로 추정 가능한 음식이 두 가지임

조선 시대 요리법인 음식디미방 등에는

우리가 아는 간장게장은 게젓이라 표현했음

실제 음식디미방 등에 나오는 게젓 조리법은 우리가 간장 게장 만드는 방법과 유사함

그리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조리법인데

예전에는

육장 어장이라 하여

간장에 고기나 생선을 넣어 그 맛을 들이게 하는 조리법이 있었음 ....

물론 몇 달씩 넣어서 흐물흐물해지도록 하는 것이고 그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는 않음

고기나 생선은 버리는 것이고 (물론 하인들이 주워가 먹겠지) 간장만 먹는 것임

요새로 치면 무슨 무슨 맛 간장 같은 것인데 ..

경종에게 올라간 게장도 이 간장일 가능성이 높음 ....

실제 조선 시대 요리책에는 게젓과 게장이 구분되어 나왔음

그러나 조선신식무쌍요리법 같은 근대 요리책에 게젓과 게장이 합해져 게장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조선 말기에 두 요리법이 하나로 합해진 듯

참고로 육장도 현재는 간소화되어 남았는데

그게 장조림 ...

3. 게와 상극이 감이 올라갔다?

본초강목 등에서 상극이라 하긴 했는데 ..

이건 내가 한의사한테 들은 건데 ....

그 기록이 전근대 중국 의학을 토대로 한 것이라 거의 유사과학 수준이라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

더구나 감과 게가 효과를 보려면 게를 쪄먹든지 구워먹든지 해야 하는 것이고

게 맛이 밴 간장으로는 효과 없다고 했음

그리고 조선 시대에 소론들이 두고두고 게장만 문제 삼은 것을 보면

감은 최소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올라갔다 보임

아마 임금이 설사를 하니 지사 효과를 보기 위해 감을 올린 듯 함

익은 감이 아니라 생감이 올라간 것으로 보면 지사 효과를 위해 일단 응급처치를 한 모양으로 보임

올린 사람이 세제 즉 연잉군...

4. 임금이 먹는 음식 다 기미라 하는 검식하는데 독살이 가능한가?

기미라 하는 검식함

일단 조선의 기미는 사극과 달리

상선 내관이 문 밖에서 기미하고

방 안에서는 세자가 식사 시중을 듬

물론 전골 같은 요리가 올라갈 때는 궁녀들이 조리하기도 하겠지만 ....

문 밖이든 임금 바로 옆이든 기미하지 않냐 하겠지만 ...

조선 말 궁녀들의 증언이긴 한데 밥과 장 종류는 기미하지 않았다 함

당시 임금 수라상 올리는 절차는

소주방에서 만들고

그걸 식사하는 곳 근처에서 다시 데워 올리는데

밥과 장은 그리 할 수 없으니 바로 옆에서 조리하거나 떠왔음

단 그런 방법을 사용했기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조리하거나 책임지는 방법을 사용했음

서양도 빵과 버터 등은 검식하지 않고 대신에 성직자 같은 믿을 만한 사람이 조리한 것과 같음

문제는 저런 밥 책임자는 세자가 겸임하거나 하는데

하필 연잉군이 ....

5. 부자와 인삼 문제 ,

일단 당시 약재를 책임졌던 이공윤이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극약 잘 쓴다고 올라온 인간이어서 의학에 대해서는 약점이 많았고

오히려 어느 정도 의학 공부를 한 연잉군이 제시한 처방이 맞았음

실제 한의학에서도 쓰는 처방이고 ....

문제는

경종 상태가 약으로 살 처지가 아니었던 것 같음 .....

실제 그리고 이러한 처방을 영조가 정성왕후에게도 쓴 것을 보면

당시 한의학계에서 사용된 처방인 듯 하게 보임

아무리 영조가 정성왕후 싫어해도 독살까지 할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고 ...

차라리 영조가 정사를 잘 보고 가족들 사이도 좋았다면

소론의 정신 승리로 끝나겠지만

영조의 가족들 대하는 행태가 문제 있었고

특히 아들을 엽기적으로 죽여

지금까지 명을 유지하고 있는 음모론으로 보임

7.

그럼 독살설은 가치가 없는 음모론이냐?

가치 있음

경종 독살설만 해도

위에서 한 것과 같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당시 노소론 대립이 격렬했고

영조의 정통성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이것을 방증하는 자료가 될 수는 있음

당시 정치 난맥상을 파악하는 단초로 독살설 가치는 있음

자기 주장 안 믿으면

노론의 후예고 친일파라는

모 사학자가 목청껏 외치면서

학계에서는 언급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어 버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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