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1944년 조선의 도시별 인구순위+일본제국 내 인구순위 이야기(feat. 답없는 북한)
1944년의 일본제국 당시 전체로 따져본다면
1. 도쿄 6,558,161명
2. 오사카 2,833,344명
3. 나고야 1,344,100명
4. 요코하마 1,019,466명
5. 경성 988,537명
6. 교토 964,466명
이었다고 함. 경성부가 제국 제 5의 도시, 번외로 평양은 제 10대 도시(히로시마보다 인구가 많았음)였다고
전반적인 인구분포를 보면 휴전선 이남의 전통적 대도시와 더불어 함경도쪽의 인구약진이 두드러짐.
일제가 만주국-함경도를 잇는 중공업콘체른을 건설하면서 노동자들이 함경도로 몰린게 이유라고 함.
흥남철수의 배경인 흥남은 당시엔 읍 이었음에도 함경남도의 도청소재지 함흥보다도 더 많은 인구를 자랑한게 이때문
남부 해안도시(부산,.인천, 군산)-내륙주요도시(대구, 광주)-남부 지역교통거점도시(대전)-경성부-북부 지역교통거점도시(사리원, 철원, 원산)-북부 내륙주요도시(평양, 함흥)-북부 국경도시(신의주, 청진)- 중국 및 러시아를 통해 국제노선 진입
(이 x축 타령은 수십년이 지난 후 오송역 논쟁에서 등장하지만 정당성이나 실제 효용도에선 넘사벽의 차이)
장기적으로는 부평, 부천을 흡수하고 인천항과 연계되어 국제항만까지 인접한 국제도시로 만들 계획이었음.
+개성의 인구가 매우 적은걸 확인할 수 있음.
개성은 1920년 46,377명, 1935년 55,537명의 인구로 각각 6위, 10위의 인구수준이었다고 함
당시 개성은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지역이고 평지가 매우 적어서 도시확장에 한계가 왔다고 함. 그리고 도시문화가 퍽 폐쇄적이고 일본인도 매우 적게 살아서(1944년 기준으로 전체 개성인구의 약 2%에 불과함. 바로 근처인 경성부가 16%) 총독부가 부 승격에도 미온적이었다고 함.
그리고 북한의 도시화수준이 얼마나 처참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자료임
흥남읍까지 모두 합친 함흥이라면 못해도 대구급, 평양은 현재 부산과 유사한 수준의 인구수준이 되어야 하는데도 저꼴인거
거기다 각종 증언들 합쳐보면 저 인구조차도 뻥이 섞여있고 실제 인구는 더 적을거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