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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중앙정보부가 북한을 완전히 가지고 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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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가 북한을 완전히 가지고 논 사건 | mbong.kr 엠봉

1968년 8월 2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통일혁명당 사건을 발표함.

통일혁명당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을 필두로 한 역사상 남한 내 최대 규모의 지하당으로, 김종태는 월북을 4번이나 하며 김일성과 독대도 하는 등 거물 간첩이었음.

하지만 1968년 6월, 김종태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체포되었고, 중정은 통혁당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모조리 체포하려고 함.

그런데 이문규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암호문건이 발견됨.

이거 써먹을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한 중정은 이문규가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음.

그리고 중정은 1968년 8월 4일, 북한의 난수방송 A-3 지령을 해독하는데 성공함.

지령문은 다음과 같음:

"일체 문건이나 물질적 근거가 될 것을 집에 두지 말 것이며 안전대책을 잘 강구할 것.

만일 우리와 접선이 필요하면 이달 7일이나 11일 오전에 보고할 것. 오는 8월 14일, 15일에 재지시를 받을 것. 건투를 바라겠음."

북한 이 멍청한 놈들이 이문규가 체포된 줄도 모르고 통신을 보낸 거임.

그리고 중정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기로 결심함.

"17일 불광동 110-20 본인 잎 40,800 송금 요망"

해석하면

"피신 중이며 입북하겠으니 긴급시 지시바람, 문규"

중앙정보부는 이미 북한이 비상연락 공중전보를 가로채 보는 방식으로 간첩들과 교신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음.

이미 난수표, 암호문건, 고정간첩 총수까지 털어버린 중정은 미끼를 놓은 거임.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그걸 무냐 안 무냐.

이틀 간의 침묵 후, 북한이 다시 난수방송을 보냄.

"보고 잘 받았음. 우리의 접선은 19일 밤 12시 제4지점(서귀포)에서 할 것임. 이날 못하면 같은 달 20일이나 21일 같은 시간에 하겠음. 만일 약속일에 못 가면 저녁 7시5분에서 20분 사이에 약속한 노래를 내보내겠음. 접선신호는 동지의 약속대로 하겠음. … 제4지점에서 접선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11일 오전에 보고하기 바람. 친척집 접근을 삼갈 것이며 14, 15일에 추가 지시를 더 내리겠음"

저 상세한 지시문을 봐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미끼를 물어버림ㅋㅋㅋㅋㅋㅋㅋ

이미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에다가 7월에 임자도 간첩단 27명이 체포당했는데도 북한은 자기들 대남 공작망이 어디까지 털린지도 모르고 있던 거임.

중정은 그렇게 북한의 이문규 탈출 계획을 완벽히 확보함.

접선 일시는 8월 19일 24시

장소는 제주 서귀포 서남방 서홍동 황우리 해안절벽

작전 연기 신호는 약속한 노래방송(조선팔경가, 유격대 행진곡)

접선 신호인 돌 세번 두드리기까지.

8월 12일, 대간첩 작전 회의가 열림.

중앙정보부가 북한을 완전히 가지고 논 사건 | mbong.kr 엠봉

회의에는 중정뿐만 아니라 합참, 각 군 정보참모부장, 경찰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이 날 북한을 거하게 엿먹일 대간첩 작전이 수립됨. 작전명은 일명 "Z 작전".

그러다가 8월 14일, 북한이 다시 지령을 내려 날짜를 19일에서 20일 오후 10시로 변경함.

날짜가 변경됐지만 시간이 짧아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늦어졌기에 작전은 그대로 가게됨.

이 작전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그 규모를 보면 알 수 있음.

육군은 57, 75, 81mm 포로 무장한 기동타격대를,

해군은 2척의 구축함과 10척의 경비정을,

공군은 F-5A 전투기 3개 편대와 C-46 수송기 2대를 동원함.

해병대도 특수전 타격대를 동원했고, 경찰 특수부대까지 참여함.

20일 Z 작전에 참여할 총 인원은 500여 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간첩 작전임.

1968년 8월 20일 오후 10시 30분, 북한 제753부대 소속 75톤급 무장간첩선이 서귀포로 접근함.

해당 무장간첩선은 최고 속력 35노트에 81mm 포로 무장했고, 14명의 무장공비가 타고 있었음.

무장간첩선이 접근한 것이 확인되자, 이문규 역을 맡은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의 경찰이 약속된대로 돌을 세번 두드림.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무장간첩선은 고무보트에 공비 둘을 태워서 해안절벽으로 보냄.

둘의 이름은 이동환과 정창룡, 둘은 도착하자마자 거침없이 절벽을 타고 올랐고, 둘이 끝까지 올라와서 보게된 광경은,

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며 날아가는 조명탄이었음.

두 공비는 조명탄이 터진 걸 보자마자 좆된걸 직감하고 즉시 총을 쏘며 도주함.

하지만 이동환은 총에 맞아 즉사했고, 정창룡만이 근처 토굴로 숨어들음.

무장간첩선의 남은 12명도 조명탄과 총성을 듣고 좆됐음을 알고 즉시 최고속력으로 도주함.

하지만 해군은 이미 저 간첩선을 기필코 잡아 족치겠다는 일념으로 군함 12척을 배치한 상태였고,

결국 간첩선은 서귀포 남동쪽 30마일 지점까지 도주하다가 기관실이 피격당해 잡혀버림.

간첩선에 타고 있던 12명 중 10명은 사살당했고, 남은 둘만이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생포됨.

한편 토굴에 숨은 정창룡은 서귀포경찰서 소속 순경 한 명을 쏘는 등 발악했지만, 끝내 사살당하고 말음.

Z 작전의 결과로 간첩선 나포, 공비 12명 사살, 2명 생포란 성과를 거둠. 거기다가 통혁당 간부들과 북한의 연결 고리까지.

우리 측의 인명 피해는 부상 4명을 빼면 전무. 정전 이후 최대의 대간첩 작전이자 완벽한 대북 공작이었음.

중앙정보부가 북한을 완전히 가지고 논 사건 | mbong.kr 엠봉

사실상 중정이 미끼를 풀고 북한을 완전히 가지고 놀아버린 거임.

Z 작전 4일 후, 중정부장이 통혁당 사건을 발표함.

1969년 7월 10일 김종태의 사형이 집행됨. 북한은 "남조선 괴뢰도당이 혁명열사를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광분함.

그리고 김종태를 공화국영웅으로 추서하고 평양전기관차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이름을 바꿈.

근데 그렇게 열폭하면 뭐하냐 이미 개쳐발리고 게임 끝났는데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북한은 통혁당이 궤멸당한게 너무 아까웠는지, 이후에 1979년까지 확인된 통혁당 재건만 무려 9번을 시도함.

https://gall.dcinside.com/m/war/349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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