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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사실 거란 성종은 3번이나 고려한테 승리할 기회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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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란 성종은 3번이나 고려한테 승리할 기회가 있었음. | mbong.kr 엠봉

26년에 걸친 고려와 거란간 여요전쟁에서 거란측 총 지휘자는 성종인데, 사실 소규모 충돌이었던 1차 전쟁과 시작부터 끝까지 고려의 장대한 전략에 휘말렸던 3차 전쟁을 빼고 2차 전쟁 때만 따지면 최소한 3번이나 요나라가 이길 찬스가 있었음.

1. 통주 전투 직후

-1010년 11월 30만명을 이끈 강조가 통주성 앞 벌판에서 성종과 싸웠다가 대패, 고려군 주력이 증발당함. 거란은 이 승리의 여새를 몰아 통주성을 공략하는데 중랑장 최질. 방어사 이원귀 등이 거란군을 1주일 동안 방어해냄.

2차 전쟁때 거란군 특징중 하나가 -다른 전투도 마찬가지지만- 공성전에 참 소질이 없다는거 40만이나 동원했는데 함락한 성은 곽주성 딱 하나. 하지만 통주전투 직후의 통주성 공략은 매우 가능성이 높았음. 패배한 고려군이 통주성 내에 들어왔던지라 사기도 매우 낮았을꺼고 거란군은 반대로 사기가 충천했을것이 분명함. 그런데 이 통주성 공략을.제대로 못하면서 말아먹음. 거란군은 이후 곽주성을 점령하긴 하나 곧바로 양규가.탈환해 버림

이 전투가 중요한게 만약 통주 전투 직후의 고려군이 겁에 질려 통주성을 넘겨줬다면 흥화진의 양규가 아무리 선전했다 하더라도 거란군은 통주성과 곽주성이라는 보급거점을 두군데나 마련하게됨. 당연히 거란군으로서는 맘 편히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음.


2. 하루 차이로 실패한 서경 함락.

거란 성종이 명군으로 불리는데.그 이유 중 하나가 집착이나.미련같은게 없다는 것. 2차전쟁에서도 드러나는데, 통주가 함락당할 가능성이 낮자 곧바로 우회해.곽주를 점령함. 이어 안주, 서경으로 내려오는데 만약 현재의 평양인 서경을 점령했다면 거란으로서는 통주. 곽주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의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음.

당시 서경 수비 총 책임자는 원종석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원종석은 문신이었는지 쪼다였던지 항복해야한다는 쪽이었음. 원종석이 항복 문서를 보내자 성종은 기뻐하면서 서경을 다스릴 관리들을 임명해서 보냄.

그런데 이 관리들이 서경에 도착하기.바로 하루전에 동북면, 그러니까 지금의 함경도에서 출발한 고려군이 도착함. 이 고려군을 이끌었던 탁사위와 지채문은 원종석을 죽이고 서경성 문을 잠가버림. 다음날 서경을 접수하겠다며 룰루랄라 왔던 거란군 관리들은 몰살당함.

어떻게 동북면 군이.평양으로 왔냐하면 통주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에 고려 중앙조정이 함경도에 있던 탁사위와 지채문을 바로 서경으로 보내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 이 고려조정의 빠른 결정때문에.즉시 출발한 동북면 군대가 서경으로 들어올수 있었던 것. 하루만 늦었으면 서경은 거란 수중으로 들어갈뻔함.

3. 십리 차이로 놓친 고려 현종.

아무튼 간에 성종은 서경 공략에도 실패했지만, 고려 수도인.개경으로 바로 진격한다는.전략적 결정을 내리게 됨. 이 결정으로 거란군은 개경으로 진격하는데. 현종은 강감찬의 조언에 따라 개경을 버리고 피난감. 현종이 도망갔다는 소식에 성종은 본대를 이끌고 현종을 추격하는데, 둘 사이의 거리가 십여리까지 좁혀졌을때 현종이 보낸 사신 하공진을 만남. 하공진은 여기서 성종에게 "우리 국왕은 멀리 멀리 도망가서 쫓아가봤자 소용없다"고 구라를 치고 이 구라를 믿은 성종이 현종의 항복 선언을 믿는척하고 돌아감.

이때 성종이 하공진의 말을 안믿고 "구라지?" 라며 현종을 추격했더라면 하루 이틀사이에 현종은 붙잡혔음. 말 그대로 한국사 최대 위기의 순간인데 성종의 판단 덕에 현종은 구사일생함.

왜 성종이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보급 문제 였을 확률이 높음. 아무리 개경을 약탈했다지만 40만 군대를 계속 보급하기엔 한계도 있고 당시 거란군의 유일한 보급기지인 곽주성도 양규에 의해 탈환당함. 즉. 1과2의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성종이 3의 오판을-당시로 따지면 합리적 판단이지만- 한거임. 말그대로 2차 여요전쟁은 고려 입장에선 어려차례 운빨이 있었던 상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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