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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고구려 후기 한강 쟁탈전의 통설과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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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후기 한강 쟁탈전의 통설과 신설 | mbong.kr 엠봉

1. 간단 요약


이거는 사진 대화 형식으로 하기는 좀 어려운 내용이라 줄글로 쓰겠습니다.

학설들을 간략하게 요약한거라 빠진 부분도 있고 애매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

너무 요약해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봐 조금 걱정이네요.

-통설

고구려가 한강을 계속 점유했다는게 현재 학계의 통설이다. 그 이유는 475~551동안 지배했다는 게 고고학적인 자료로 나오고 삼국사기 지리지, 일본서기 권 19 흠명지 12조 등등을 근거로 하고 있음.

그런데 문제는 백제 본기의 내용 때문인데 사료를 통으로 부인하기 어렵고 고구려 백제 사이에 전쟁이 많이 일어났으니 그 문면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환빠들이 항상 중국이 뭐 숨겼네, 일본이 조작했네 이딴 개소리 너무 많아서 조작했다 이 말하면 거부감부터 듦.

권위회복을 위해 웅진시대 지명을 한성시대의 지명으로 대입 시켰다는 걸로 무작정 찬란한 역사를 세계가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환빠들과는 결이 다른 주장임.

지명 이동설은 백제가 웅진으로 가면서 지명을 함께 옮겼다라는 주장이며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기백이 있고 노중국 교수님도 그 범위를 확장해 웅진과 한성 시대 지명이 다수 일치해서 모두 지명 이동으로 파악함. 그리고 또 지명이동설에 대해 동성왕대로만 국한하는 주장 등등 일단 통설 주장하는 사람들은 백제본기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음.

절충론도 존재는 하지만 일단 이건 아래에 소개함. 두찬설은 기록상 오류로 본다인데 일본서기 기록을 신뢰하며 백제본기 편찬하는 중에 오류가 일어났다와 기년조정설은 백제본기가 후대에 정리되었기에 역사가의 무지로 인해 미래의 일이 여기에 실린 것 등등 다양하게 주장 중임.

그리고 또 고구려 유물들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고 기록으로도 백제본기만 잘만 보면 딱히 문제 없기 때문에 통설이 더 힘을 얻음.

-백제본기는 헛소리하지 않았다.

백제영유설은 백제본기를 존중하며 오곡원 전투 이전에 한강을 지속적으로 차지했다고 주장하고 고구려의 고고학 자료에 대해서 잘 보면 광역이 아니라 거점지배이다. 만약 고구려가 ㄹㅇ 제대로 다스렸다면 광역으로 지배했겠지라는 식으로 논파함. 단 예전 주장인 장수왕 이후 힘이 약해져서 서로 힘에 못미쳤다는 고고학 자료로 반론됨. 군사유적이 발견됐거든.

이렇기에 고구려의 통치를 한강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닌 군사적 거점 지배로 이해하자는 주장, 고구려 유물 유적을 반드시 영역지배와 직결 시키는 건 신중하게 봐야할 것 이라는 주장도 나옴.

또 일시적으로 점령해서 백제 유물이 남지 않다거나 그렇게 볼 수 있음,.

그리고 일단 기록을 보면 당시 경기만 일대의 해상은 고구려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증거로 문주왕이 송에 사신 보내다가 막힌 사건이나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났다는 기록을 보면 백제의 국경선이 경기 남부나 충청 북부로 보는 입장도 있음.

왜국이나 고구려 백제 등등이 중국 가서 허세 부리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임.

기본적으로 백제 본기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임. 난 일단 통설 지지자임. 백제가 왔다 해도 일시적 진출, 아주 잠깐 정도로 보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백제는 한강 관련해서도 힘들게 지배했고 전라도 지역도 동성~성왕 시기에 완벽히 지배함. 가까운 곳도 오래 걸리는 바다 건너 요서를 경략했다는 확실히 비판적으로 봐야할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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