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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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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1945년 8월 8일~15일 일주일 소련의 참전 (바쁜 사람은 빨간색 글씨나 밑에 3줄 요약 보시길)


1.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만약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바로 수락했다면?"

"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실에 착안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이 평화공작에 매달려 항복을 늦췄기에 자국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일본의 항복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제 유지보다 한반도만큼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도부는 일본이 식민지 없이 지탱될 수 없으며 특히 한반도만큼은 국제법상 적법대로 가진 영토이기에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헌장과 카이로 선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권성욱(중일전쟁, 별들의 흑역사, 군벌전쟁의 저자)-

일본제국 정부가 7월 말에 포츠담 선언을 바로 수락했더라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20만 명이 넘는 희생자는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가 미소에 의해 분단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니시무라 히데키(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저자)-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2. 일본 군부는 소련 참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일본 외무성의 공식 입장은 얄타협정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외무대신 도고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스크바 주재 사또 대사도 이를 탐지하지 못했다고 통분하고 있습니다.

3. 일본 군부는 소련이 참전할 것을 알고도 왜 은폐했나?

태평양전쟁 종결을 연구한 저서로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학술상을 받은 미국 캘리포니아(산타 바바라)대학의 일본인 교수 하세가와 츠요시는 이 분야의 최고권위자인데, 그는 일본이 미국을 거부하고 항복을 지연시켜 소련에 의존하여 소련의 중재를 추구 한 것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소련에 의존함으로써 국체를 호지하고 종전에 유도한다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무조건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 소련이 야말로 물에 빠지는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소련은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확실히 일본의 위정자들에게는 소련은 엄격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한 아편이었다."

4. 일본이 포츠담 선언 받았을 시 예상되는 동아시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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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약 일본이 포츠담 선언 바로 수락했으면 얻을 이득

한국은 우선 분단과 6.25전쟁이 없음. 한반도 전체가 미군 통제 지역으로 설정. 일본은 쿠릴 열도 안뺏기고 원자폭탄도 안처맞음.

3줄 요약

1. 일본은 소련이 참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음.

2. 그런데 일본 군부는 소련 중재로 한반도를 일본이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망상에 빠짐

3.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본이 포츠담 선언 수락했다면 한국(분단 피하고 6.25전쟁 피하고)과 일본(원폭 안맞고 쿠릴열도 지키고) 모두에게 윈윈이었다는데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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