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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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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첫 번째 전조: 계민가한

612년 수양제가 요동 원정에 나섰을 때, 그에게 대적하는 세력은 오로지 고구려뿐인 것처럼 보였다. 돌궐의 흥기 이래로 중국의 오랜 근심이었던 북방은 보가가한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그 위세가 줄었고, 새로이 동돌궐의 지배자로 떠오른 계민가한(돌리가한)은 수나라에게 막대한 원조를 받은 인물이었다. 수양제가 고구려로 눈길을 돌린 것은 흔히 이러한 돌궐 문제의 해결 때문이었다고 여겨지곤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표문의 내용이 존재한다.

大隋聖人莫緣可汗, 憐養百姓, 如天無不覆也, 如地無不載也. (···) 或南入長城, 或住白道, 人民羊馬, 遍滿山谷.

- 『수서』 북적열전 돌궐

그렇다면 그 동돌궐 멸망의 주역인 당태종은 무언가 달랐을까.

두 번째 전조: 진주가한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645년 당태종이 요동 원정에 나섰을 때 그에게 대적하는 세력은 오로지 고구려뿐인 것처럼 보였다. 수나라의 멸망 이래로 중국의 오랜 근심이었던 동돌궐은 힐리가한의 생포로 말미암아 그 날개가 꺾였고, 새로이 막북의 지배자로 떠오른 설연타는 돌궐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태종이 고구려로 눈길을 돌린 것은 흔히 이러한 북방의 약화 때문이었다고 여겨지곤 한다.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을 떠난 것은 바로 이러한 때였다. 기실 설연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었던 것이다. 당태종도 이를 알았다. 그는 원정을 떠나며 설연타의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의 가한에게 전해라. ‘우리 부자가 함께 동쪽으로 고려(高麗)를 정벌할 것이니, 네가 만약 변경을 약탈할 수 있다면, 어디 곧바로 와 보아라.’”

“語爾可汗, ‘我父子並東征高麗, 汝若能寇邊者, 但當來也.’”

- 『구당서』 철륵열전

수양제에 이어 당태종도 이러했다면, 당고종은 달랐을까.

세 번째 전조: 철륵제부

물론 661년 당군이 고구려로 출정했을 때, 제국에 대적하는 세력은 오로지 고구려뿐인 것처럼 보였다. 당태종의 붕어 이래로 중국의 오랜 근심이었던 서돌궐은 사발라가한의 생포로 말미암아 당나라의 판도에 들어왔고, 설연타의 멸망 이후 막북에 남은 철륵 제부들은 대개 당나라의 기미부주로 편제되어 있었다. 당고종이 고구려로 눈길을 돌린 것은 흔히 이러한 유목 국가들의 평정 때문이었다고 여겨지곤 한다.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 mbong.kr 엠봉

이성제, 「650년대 전반기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동향과 고구려 - 고구려 사절이 아프라시압 궁정벽화에 그려진 배경에 대한 검토」, 『동북아역사논총』 65, 2019, 255쪽. 참고용 지도이다.

초원의 격변: 당군이 한 팔을 잃다

다만 아사나충군은 철륵 토벌을 명령받았음에도 실제로는 고구려와 연결된 거란족과 먼저 전투를 벌인 것으로 보여 흥미롭다. 금석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현경(顯慶) 5년(660)에 (아사나충이) 장잠도행군대총관에 임명되었다. 진한(辰韓)이 움직여 소요를 일으키니, 종군하여 잔악한 무리를 제거하였는데, 거란이 독(毒)을 뿜어내므로, 창끝[戈]을 돌려 난을 평정하였다. 현도(玄兎)의 떠도는 혼[遊魂]을 없애고, 황룡(黃龍)의 저항을 진압하였다.

顯慶五年, 詔爲使持節長岺道行軍大摠管. 辰韓俶擾, 從旆除殘, 契丹縱毒, 迴戈拯亂. 剿玄兎之遊魂, 覆黃龍之巨.

- 「아사나충비(阿史那忠碑)」

[2차 고당전쟁] 5. 예고된 변곡점 | mbong.kr 엠봉

신광철, 『관방체계를 통해 본 고구려의 국가전략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314쪽. 참고용 지도이다.

당나라의 전선 방기: 과대팽창의 한계

이처럼 막북에서 발생한 철륵 제부의 반란은 2차 고당전쟁의 변곡점이 되었다. 수양제는 물론 당태종 시절보다도 약화된 듯 보였던 북방이 이번에도 고구려 침공의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이로써 2차 고당전쟁의 전황은 점차 반전하기 시작한다.

[5-1] 서길수, 「아프라시압 고구리[高句麗]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고구리[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Ⅱ)」, 『동북아역사논총』 68, 2020, 186쪽.

[5-2] 임정운,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545~630) 관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79-80쪽.

[5-3] 『隋書』 卷84 列傳49 北狄 突厥.

[5-4] 『北史』 卷99 列傳87 突厥.

[5-5] 임정운,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545~630) 관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83쪽.

[5-6] 『隋書』 卷84 列傳49 北狄 突厥.

[5-7] 임정운,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545~630) 관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85쪽.

[5-8] 『隋書』 卷60 段文辰傳; 『隋書』 卷41 高熲傳.

[5-9] 임정운,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545~630) 관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89쪽.

[5-10] 『隋書』 卷65 薛世雄傳.

[5-11] 이성제, 「高句麗와 투르크계 北方勢力의 관계 : 이해의 방향과 연구방법에 대한 모색」, 『고구려발해연구』 52, 2015, 157-158쪽.

[5-12] 이성제, 「高句麗와 투르크계 北方勢力의 관계 : 이해의 방향과 연구방법에 대한 모색」, 『고구려발해연구』 52, 2015, 157쪽.

[5-13] 『隋書』 卷84 列傳49 北狄 突厥.

[5-14] 임정운, 『중원왕조와 돌궐1제국(545~630) 관계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106쪽.

[5-15] 『新唐書』 卷217 列傳142 回鶻.

[5-16] 『舊唐書』 卷199 列傳149 鐵勒.

[5-17] 『新唐書』 卷217 列傳142 回鶻.

[5-18] 『舊唐書』 卷109 列傳59 契苾何力.

[5-19] 『資治通鑑』 卷196, 貞觀 16年 10月 조.

[5-20] 『資治通鑑』 卷197, 貞觀 17年 閏6月, “薛延陀眞珠可汗使其侄突利設來納幣, 獻馬五萬匹, 牛·橐駝萬頭, 羊十萬口.”

[5-21] 『舊唐書』 卷199 列傳149 鐵勒.

[5-22] 『資治通鑑』 卷197, 貞觀 17年 閏6月 10日 조.

[5-23] 『新唐書』 卷217 列傳142 回鶻.

[5-24] 『舊唐書』 卷199 列傳149 鐵勒.

[5-25] 『新唐書』 卷217 列傳142 回鶻, “夷男沮縮, 不敢謀, 以使謝, 固請助軍.”

[5-26] 『舊唐書』 卷199 列傳149 鐵勒, “夷男氣懾不敢動.”

[5-27] 『新唐書』 卷110 列傳35 執失思力.

[5-28] 『資治通鑑』 卷198 貞觀 19年 9月 壬申 조.

[5-29]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 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동북아역사논총』 44, 2014, 266쪽; 서길수, 「아프라시압 고구리[高句麗]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고구리[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Ⅱ)」, 『동북아역사논총』 68, 2020, 193쪽.

[5-30] 『資治通鑑』 卷198, 貞觀 19年 8月 10日 考異, “實錄上謂近臣曰, ‘以我量之延陀其死矣.’ 聞者莫能測.”

[5-31]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 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동북아역사논총』 44, 2014, 269쪽.

[5-32] 서영교, 「주필산(駐蹕山) 전투와 안시성(安市城)」, 『동국사학』 58, 2015, 74쪽.

[5-33] 『舊唐書』 卷199 列傳149 鐵勒.

[5-34] 정원주,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목적과 의미」, 『고구려발해연구』 67, 2020, 93쪽.

[5-35] 서길수, 「아프라시압 고구리[高句麗]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고구리[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Ⅱ)」, 『동북아역사논총』 68, 2020, 196쪽.

[5-36] 임중혁, 「한대의 문서행정」, 『중국학보』 29, 139쪽.

[5-37] 김재효, 강연석, 고호경, 「전통적인 길이 척도 환산에 대한 역사ㆍ문화적 재고」, 『한국의사학회지』 23(2), 2010, 17쪽.

[5-38]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3쪽.

[5-39] 서영교, 「주필산(駐蹕山) 전투와 안시성(安市城)」, 『동국사학』 58, 2015, 69쪽.

[5-40]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 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동북아역사논총』 44, 2014, 280쪽.

[5-41] 서영교, 「주필산(駐蹕山) 전투와 안시성(安市城)」, 『동국사학』 58, 2015, 70-71쪽.

[5-42]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 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동북아역사논총』 44, 2014, 278쪽.

[5-43] 『新唐書』 列傳142下 回鶻.

[5-44] 서길수, 「아프라시압 고구리[高句麗]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고구리[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Ⅱ)」, 『동북아사논총』 68, 2020, 199쪽.

[5-45] 『新唐書』 列傳142下 回鶻.

[5-46] 『舊唐書』 卷195 列傳145 回紇.

[5-47] 『新唐書』 列傳142下 回鶻.

[5-48] 이성제, 「650년대 전반기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동향과 고구려 - 고구려 사절이 아프라시압 궁정벽화에 그려진 배경에 대한 검토」, 『동북아역사논총』 65, 2019, 253쪽.

[5-49] 『新唐書』 列傳142下 回鶻.

[5-50] 이성제, 「650년대 전반기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동향과 고구려 - 고구려 사절이 아프라시압 궁정벽화에 그려진 배경에 대한 검토」, 『동북아사논총』 65, 2019, 254쪽.

[5-51] 박원길, 「바이칼호 주변의 철륵(鐵勒) 3부(Bokhud, Bayirkhu, Khurigan) 고찰」, 『몽골지역연구』 1(1), 2016, 14쪽.

[5-53] 『資治通鑑』 卷200, 唐紀16 高宗 顯慶 5年 조.

[5-54] 박원길, 「바이칼호 주변의 철륵(鐵勒) 3부(Bokhud, Bayirkhu, Khurigan) 고찰」, 『몽골지역연구』 1(1), 2016, 7-8쪽.

[5-56] 이성제, 「高句麗와 투르크계 北方勢力의 관계 : 이해의 방향과 연구방법에 대한 모색」, 『고구려발해연구』 52, 2015, 162-163쪽.

[5-57]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2011, 206쪽.

[5-58] 『冊府元龜』 卷986 外臣部 征討5.

[5-59] 『舊唐書』 卷195 列傳145 回紇.

[5-60] 『舊唐書』 卷83 薛仁貴傳.

[5-62]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2쪽.

[5-63]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87-188쪽.

[5-64] 『集神州三寶感通錄』 中, “五十唐龍朔中. 有事遼左行軍將薛仁貴. 行至隋主討遼古地. 乃見山像空曠蕭條絕於行往. 討問古老云. 是先代所現. 便圖寫傳本京師云云.”

[5-65] 이민수, 「660~661년 당의 고구려 공격군 편성과 水軍 운용 전략」, 『한국고대사탐구』 38, 2021, 155쪽.

[5-66] 서영교,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동국사학』 57, 2014, 335쪽.

[5-67] 『新唐書』 卷3, 高宗本紀 龍朔 元年(661) 10月 癸酉 조.

[5-68]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14쪽.

[5-69]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3쪽.

[5-70]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3쪽.

[5-71]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5쪽.

[5-72] 이민수, 「661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군사』 122, 2022, 234쪽.

[5-73]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4쪽.

[5-74] 『資治通鑑』 卷200, 唐紀16 高宗 龍朔 2年 조.

[5-75] 김병곤, 「661~662년 당 수군의 평양 직공책의 전략과 한계」, 『한국사학보』 50, 2013, 57쪽.

[5-76]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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