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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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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당고종의 우울

후유증: 당나라의 피폐

이러한 결과를 불러온 정인태의 작전 실패는 다음과 같이 평가되어 있다.

軍還, 司憲大夫楊德裔劾奏, “仁泰等誅殺已降, 使虜逃散, 不撫士卒, 不計資糧, 遂使骸骨蔽野, 棄甲資寇. 自聖朝開創以來, 未有如今日之喪敗者.”

- 『자치통감』 권200, 당기 16

후유증: 당군의 수세

고구려의 공세

[2차 고당전쟁] 8. 태산봉선(泰山封禪) | mbong.kr 엠봉

참고용 지도. 당나라의 1리는 약 560m이므로, 3,100리는 1,736km이고 2,000리는 1,120km이다.

백제부흥군의 붕괴

예컨대 664년 10월 유인궤가 당고종에게 올린 상주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臣伏睹所存戍兵, 疲羸者多, 勇健者少, 衣服貧敝, 唯思西歸, 無心展效. (···) 陛下留兵海外, 欲殄滅高麗. 百濟·高麗, 舊相黨援, 倭人雖遠, 亦共為影響, 若無鎮兵, 還成一國. 今既資戍守, 又置屯田, 所借士卒同心同德, 而眾有此議, 何望成功!

- 『자치통감』 권201, 당기 17

양국의 타협책: 태산봉선

연개소문의 유언이 지켜졌더라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8-1]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92쪽.

[8-2] 여호규, 「7세기 중엽 국제정세 변동과 고구려 대외관계의 추이」, 『대구사학』 133, 2018, 24-25쪽.

[8-3]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75-76쪽.

[8-4] 서영교, 「『新唐書』 日本傳에 보이는 唐高宗 令出兵援新羅 璽書의 背景」, 『역사학보』 237, 2-3쪽.

[8-5]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114쪽.

[8-6]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84쪽.

[8-7]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88-89쪽.

[8-8]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74쪽.

[8-9] 『新唐書』 卷220, 列傳145 東夷 高麗.

[8-10]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87쪽.

[8-11]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4쪽.

[8-12]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6쪽.

[8-13]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103쪽.

[8-14]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100쪽.

[8-15] 『資治通鑑』 卷201, 麟德 元年(664) 12月, “自是上每視事, 則后垂簾於後, 政無大小皆與聞之.”

[8-16] 장창익, 「唐 高宗 시기 2次 高句麗 遠征과 政局의 再編」, 『동양사학연구』 155, 2021, 115쪽.

[8-17] 『舊唐書』 卷83 薛仁貴傳.

[8-18] 『資治通鑑』 卷200, 高宗 龍朔 2年 3月 조.

[8-19] 『資治通鑑』 卷200, 高宗 龍朔 2年 3月, “仁泰將輕騎萬四千, 倍道赴之, 遂逾大磧, 至仙萼河, 不見虜, 糧盡而還. 值大雪, 士卒饑凍, 棄捐甲兵, 殺馬食之, 馬盡, 人自相食, 比入塞, 餘兵才八百人.”

[8-20] 서영교,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동국사학』 57, 2014, 338쪽.

[8-21] 이성제, 「7세기 東突厥系 蕃將과 蕃兵의 활동 : 麗唐戰爭 시기 활동을 중심으로」, 『동양사학연구』 125, 2013, 203쪽.

[8-22] 서영교,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동국사학』 57, 2014, 339쪽.

[8-23]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5쪽.

[8-24] 『資治通鑑』 卷201, 龍朔 3年 8月 戊申(27), “上以海東累歲用兵, 百姓困於徵調, 士卒戰溺死者甚眾, 詔罷三十六州所造船, 遣司元太常伯竇德玄等分詣十道, 問人疾苦, 黜陟官吏.”

[8-25]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9쪽.

[8-26] 『資治通鑑』 卷200, 高宗 龍朔 2年 7月 조.

[8-27] 『資治通鑑』 卷201, 高宗 龍朔 2年 12月, “詔以方討高麗·百濟, 河北之民, 勞於征役, 其封泰山·幸東都並停.”

[8-28] 서영교, 「고구려의 最後와 彗星」, 『진단학보』 138, 2022, 51-52쪽.

[8-29]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8쪽.

[8-30] 『新唐書』 卷3, 本紀3 高宗 龍朔 2年 7月; 『舊唐書』 卷199上, 列傳149上 東夷 百濟.

[8-31] 김영관, 「就利山會盟과 唐의 百濟 故土 支配 政策」, 『先史와 古代』 38, 2009, 68쪽; 김영관, 「百濟 滅亡後 扶餘隆의 行蹟과 活動에 대한 再考察」, 『百濟學報』 7, 2012, 86~89쪽;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6쪽.

[8-32] 『資治通鑑』 卷201, 高宗 龍朔 2年 12月 조.

[8-33]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8쪽.

[8-34] 『資治通鑑』 卷201, 高宗 龍朔 2年 12月 조.

[8-35] 정병준, 「吐蕃의 吐谷渾 倂合과 大非川 戰鬪 : 唐朝의 韓半島 政策과 관련하여」, 『역사학보』 218, 2013, 319쪽.

[8-36]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8쪽.

[8-37]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9쪽.

[8-38] 『資治通鑑』 卷201, 高宗 龍朔 3年 5月 조.

[8-39] 정병준, 「吐蕃의 吐谷渾 倂合과 大非川 戰鬪 : 唐朝의 韓半島 政策과 관련하여」, 『역사학보』 218, 2013, 320쪽.

[8-40] 정병준, 「吐蕃의 吐谷渾 倂合과 大非川 戰鬪 : 唐朝의 韓半島 政策과 관련하여」, 『역사학보』 218, 2013, 323쪽.

[8-41] 이인철, 「7세기 고구려 군사활동의 주요 변수」, 『신라문화』 24, 2004, 215쪽;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57쪽.

[8-42] 김상보, 나영아, 「고대 한국의 도량형 고찰」, 『동아시아 식생활학회지』 4(1), 1994, 7쪽.

[8-43]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57-158쪽.

[8-44] 『通典』 卷186, 邊防2 東夷 下; 『太平寰宇記』 卷173, 四夷2 東夷2 高勾驪國.

[8-45]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60쪽.

[8-46]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75-176쪽;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61쪽.

[8-47] 김지영, 「7세기 중반 거란의 동향 변화와 고구려-660년 거란의 이반을 기점으로-」, 『만주연구』 12, 2011, 89쪽.

[8-48] 『新唐書』 卷110, 列傳35 泉男生傳, “男生走保國內城, 率其衆與契丹·靺鞨兵內附, 遣子獻誠訴諸朝.”

[8-49]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78쪽.

[8-50]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2011, 210쪽.

[8-51] 『舊唐書』 卷高199, 列傳149 東夷 高麗, “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8-52] 『新唐書』 卷220, 列傳145 東夷 高麗, “俗多淫祠, 祀靈星及日·箕子·可汗等神.”

[8-53]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2011, 211쪽.

[8-54]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2011, 210-211쪽.

[8-55]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62쪽.

[8-56]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8쪽.

[8-57]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56쪽.

[8-58] 『舊唐書』 卷199上, 列傳149上 東夷 百濟.

[8-59] 김지영, 『7세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89쪽.

[8-60]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51쪽.

[8-61] 김진한, 「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 변화와 그 배경」, 『고구려발해연구』 39, 2011, 117쪽.

[8-62] 정원주, 「男生의 失脚 배경과 그의 行步」, 『한국고대사연구』 75, 2014, 315-317쪽; 여호규, 「7세기 중엽 국제정세 변동과 고구려 대외관계의 추이」, 『대구사학』 133, 2018, 184쪽;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51쪽.

[8-63] 『三國史記』 卷6, 新羅本紀 文武王 4年 7月

[8-64] 김영관, 「就利山會盟과 唐의 百濟 故土 支配 政策」, 『선사와 고대』 38, 2009, 73쪽; 김진한, 「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 변화와 그 배경」, 『고구려발해연구』 39, 2011, 117쪽.

[8-65]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51쪽.

[8-66] 채미하, 「666년 고구려의 唐 封禪儀禮 참여와 그 의미」, 『동북아역사논총』 56, 2017, 52쪽.

[8-67] 이민수, 「7세기 중화적 천하질서에 대한 가장 강렬한 저항 - 동북아역사재단(임기환 지음), 『고구려와 수 · 당 70년 전쟁』 -」, 『군사』 126, 2023, 221쪽.

[8-68] 채미하, 「666년 고구려의 唐 封禪儀禮 참여와 그 의미」, 『동북아역사논총』 56, 2017, 79쪽.

[8-69] 『冊府元龜』 卷36, 帝王部37 封禪2, 乾封 元年, “属國家無事, 天下太平, 華夷乂安, 遠近輯睦, 所以躬亲展礼, 褒赞先勋.”

[8-70] 『資治通鑑』 卷201, 高宗 麟德 2年 8月 조.

[8-71] 이성제, 「唐 高宗의 泰山 封禪과 高句麗의 對應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고구려발해연구』 64, 2019, 220쪽.

[8-72] 김용만, 「2次 高句麗 - 唐 戰爭(661-662)의 進行 過程과 意義」, 『민족문화』 27, 2004, 198쪽.

[8-73] 김지영, 『7세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207쪽.

[8-74] 이성제, 「唐 高宗의 泰山 封禪과 高句麗의 對應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고구려발해연구』 64, 2019, 210-211쪽.

[8-75] 이성제, 「唐 高宗의 泰山 封禪과 高句麗의 對應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고구려발해연구』 64, 2019, 213쪽.

[8-76] 이민수, 「7세기 중화적 천하질서에 대한 가장 강렬한 저항 - 동북아역사재단(임기환 지음), 『고구려와 수 · 당 70년 전쟁』 -」, 『군사』 126, 2023, 221쪽.

[8-77] 여호규, 「7세기 중엽 국제정세 변동과 고구려 대외관계의 추이」, 『대구사학』 133, 2018, 184쪽.

[8-78] 채미하, 「666년 고구려의 唐 封禪儀禮 참여와 그 의미」, 『동북아역사논총』 56, 2017, 76쪽.

[8-79]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51쪽.

[8-80] 여호규, 「7세기 중엽 국제정세 변동과 고구려 대외관계의 추이」, 『대구사학』 133, 2018, 222쪽.

[8-81] 채미하, 「666년 고구려의 唐 封禪儀禮 참여와 그 의미」, 『동북아역사논총』 56, 2017,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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