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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고려 현종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비운의 용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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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의 기구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대목이 바로 그가 태조 왕건의 유일한 후손으로서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고려에 현종 말고도 왕건의 숨겨진 후손들이 더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현종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비운의 용손 | mbong.kr 엠봉

왕건의 스물다섯 아들 가운데 15남으로 태어난 효은태자에게는 왕림과 왕정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효은태자의 어머니였던 동양원부인 유씨는 그 유명한 유금필의 딸로서, 그의 평산 유씨 가문은 당시 고려의 정국을 주도하고 있던 패서 세력의 일원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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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려 초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왕자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것이었고, 효은태자는 결국 광종 연간의 대숙청에 휘말려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의 죄에 연좌된 왕림·왕정 형제는 목숨만 부지한 채로 민간에 숨어살게 된다.

고려 현종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비운의 용손 | mbong.kr 엠봉

그러다가 강조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왕림·왕정 형제는 강조를 위시한 패서계의 지원을 받아 마침내 복권될 수 있었고, 그들의 후손은 고려가 멸망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개성 왕씨의 명맥을 잇게 되는데, 오늘날 개성 왕씨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양군파의 중시조 동양군이 바로 다름 아닌 효은태자이다.

효은태자(孝隱太子)는 사적에 그 이름이 빠져 있으며 동양군(東陽君)이라고도 부른다. 성격이 포악하고 흉포한데다 소인배들과 사귀면서 반역의 뜻을 몰래 품자 광종(光宗)이 그를 처형해버렸다. 왕림(王琳)·왕정(王禎) 두 아들을 두었는데 효은태자가 죽자 둘은 어린 탓으로 죽음은 면하고 도망쳐 민간에 숨어살면서 근근이 목숨을 이어갔다. 강조(康兆)가 정권을 잡자 임금에게 아뢰어 둘에게 작위를 주고 노비와 전장(田莊)도 지급했으며 종실 족보에 올려주었다. 왕림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내다 죽었고, 왕정은 태자첨사(太子詹事)·상경거도위(上輕車都尉)를 지내다 현종(顯宗) 3년(1012)에 죽었으며 시호를 온결(溫潔)이라 하고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추증되었다.

『고려사(高麗史)』 종실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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