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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조선과 인연이 깊은 일본의 전시 외무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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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인연이 깊은 일본의 전시 외무장관들 | mbong.kr 엠봉

2차대전의 끝을 알리는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무장관 시게미쓰 마모루

이 장면을 녹화해둔 미국 방송을 보면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게 있음

무슨 연유로 다리를 잃었냐하면

조선과 인연이 깊은 일본의 전시 외무장관들 | mbong.kr 엠봉

바로 윤봉길의사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 당시 단상에서

중화민국 공사 자격으로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던 것이었음

그래서 영상을 보면 의족이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함

근데 이 사람은 전쟁이 끝났을때 외무장관이었기 때문에 대표로 사인하긴 했지만

전쟁시작과 전쟁 마무리 단계에서의 외무장관은 딴 사람이었음

조선과 인연이 깊은 일본의 전시 외무장관들 | mbong.kr 엠봉

그 사람의 이름은 도고 시게노리

도죠 히데키 내각의 외무장관이었고 대표적인 협상파였음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했지만

결국 진주만이 터졌고 그 후에 도죠 히데키랑 갈등하다 사임했고

전쟁이 끝날때쯤 복귀해서 항복 협상을 주도하여 결국 일본이 항복하는데 역할을 함

마지막에는 내 할일 다했다 하여 내각에 들어가지 않아서 미주리 함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어찌보면 전쟁을 시작할 때, 전쟁의 마지막까지 거의 결정적인 외교는 이 사람이 했다고도 볼 수 있음

항복 후에 열린 전범재판에서

라는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 중에 1950년 감옥에서 사망함

그런 사람이 조선과는 무슨 인연이 깊냐 하면

이 사람의 한국식 이름이 박무덕임

가고시마 그러니까 옛 사쓰마 지방으로 끌려 온 조선인 도공 후손이었음

수백년이 지나도록 조선인 도공들은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이 근대화의 길을 가면서

많은 조선인 도공 커뮤니티도 그냥 일본으로 흡수되기 시작하는데

당시 박무덕은 공부를 잘했기에 싹수가 보였고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도고 가문의 족보를 사서

신분을 세탁해주었음

그래서 새로운 이름인 도고 시게노리로 살면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고 끝내는 일본 외무장관까지 함

물론 평생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겠지만

조선인 최초로 외교관이 된 장철수 씨를 불러다가 술까지 사주며

격려해주었다고 함

조선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할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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