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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고려 개경 백성들의 집은 토굴, 움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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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ong.kr/issue/2010864 복사

개경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언급하고자 귀족의 저택, 사찰은 금칠한 집, 백성들은 토굴, 움집이라면서 농담삼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진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간략하게 기록을 확인해본다.


[[왕성이 크다고는 하나 주위는 산과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고 백성들이 모여 있는 땅은 울퉁불퉁하고 좁기 때문에 벌집이나 개미구멍의 형세로 모여 살고 있으며, 초가 지붕을 엮어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이다. 가옥의 크기는 서까래 두 개를 맞춰 올려놓은 정도에 불과하다. - 고려도경]]

벌집이나 개미구멍이라는 단어에만 몰입해서 토굴과 움집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멀리서 보는 형세가 그렇다는 거지 토굴과 움집에서 살았다는 내용이 아니다.

초가 지붕을 엮었다는 점과 서까래가 언급되는 것을 보아 우리가 아는 초가집과 모양은 다소 달랐어도 움집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서긍은 움집이면 움집이라고 적었을 놈이다.

사진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의 집을 묘사했을 가능성이 큰 토기 유물이다.

고려 개경 백성들의 집은 토굴, 움집이었을까? | mbong.kr 엠봉 고려 개경 백성들의 집은 토굴, 움집이었을까? | mbong.kr 엠봉 고려 개경 백성들의 집은 토굴, 움집이었을까? | mbong.kr 엠봉

큰 구멍은 주전자 같은 걸로 사용한 토기라서 있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자.

왠지 조선 시대 초가집보다 멋져보인다면 일본의 초가집이나 나무 판자 집이 사진 속 토기와 닮아서 그럴 것이다. 잊지 말자. 본래 움집 생활을 하던 조몬인을 정복한 야요이인들은 한반도 도래인이다. 비슷한 건물을 지은 게 당연하다.

물론 겉모양과 다르게 실생활에 있어선 조선 시대 초가집이 훨씬 발전된 형태였다. 조선 시대 초가집을 너무 얕잡아 보면 안 된다. 나무 판자 따위로 만든 집을 삼화토로 만든 조선 시대 초가집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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